아주 좋아하는 게임을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네비게이터(Navigator·항해사)라는 보드게임입니다. 이 게임에는 다른 카드 게임과 구분되는 무척 독특한 특징이 있어요. 대부분 카드 게임들은 상대보다 높은 숫자의 카드를 내든지, 손패를 먼저 털든지 해서 이기는 게 목적이지요. 하지만 네비게이터는 그런 게임을 여러 판 반복해서 최종적으로 내가 '몇 번 이기고 지는지 맞히는' 게 목적입니다. 

요약하면 이런 식입니다. 우선 게임을 몇 판 할지 정합니다. 5판으로 결정했다고 칠게요. 그럼 참여자들은 카드를 나눠 받은 다음, 받은 카드를 보면서 내가 5판 중 몇 번 이길 각인지 예측해봅니다. 예측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적어둬요. 그리고 게임을 시작해요. 5판이 모두 끝났을 때, 자기가 했던 예측과 가장 오차가 적게 이기고 진 사람이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참가자들은 예측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눈물의 환장쑈를😭 벌이게 됩니다. 생각보다 너무 이겨버려서 '제발 이 판은 나 대신 네가 이겨달라'고 비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그런 참가자를 골탕먹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짜고 일부러 져버리기도 합니다. 

이기고도 슬퍼질 수 있는 전복성이 바로 이 게임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이게 제가 네비게이터를 좋아하는 이유예요. 단편적인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큰 그림과 방향이 더욱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거든요. 때로는 전략적으로 패배해야 진짜로 이길 수 있다는 걸 네비게이터를 할 때마다 실감해요. 현실의 항해도 어디서 닻을 내려 파도를 버틸지 가늠하는 게 아주 중요하듯이🧭. 문득 용기가 없어질 때면 저는 네비게이터를 떠올립니다. 보드게임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습니다. 손님들께 네비게이터를 설명해 드릴 기회가 생겨서, 이 게임에 대한 경의를 담아 '네비게이터는, 인생을 항해하는 게임입니다.'라고 비장하게 소개드렸죠. 그리고 사장님께 혼났습니다. 

사실은 배만 타면 멀미하는

하상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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