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소개합니다. 수도원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평생을 보내는 수도사들의 이야기 <세상 끝의 집 –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회는 프랑스에서 창설, 전 세계 12개 지역에서 약 300명의 수도자들이 모인 천주교 수도회입니다. 정해진 공간에서 홀로 기도와 노동, 텃밭가꾸기 등으로 침묵속에 하루를 보내며, 죽어서도 가족 곁이 아닌 수도원에 묻혀서 ‘봉쇄’를 실천합니다. 11세기에 세워진 이후 천년 가까이 이런 수도 방식을 유지했다고 해요. 다큐멘터리는 이 수도회의 유일한 아시아 분원, 경북 상주의 한국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별 내용은 없어요. 그냥 10명 남짓한 수사들의 침묵 속 하루 일상이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계절이 변해도 변함없는 일상. 이 다큐 이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도 프랑스에 있는 카르투시오 본원을 배경으로 지루해 보이는 ‘침묵’을 집요하게 보여주죠. 💬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수사들이 철저하게 독방에 고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세상과의 연결에도 열려있는 태도였어요.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수도원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는데, 이 때는 대화가 허용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둘씩 짝지어 가면서 중간중간 짝을 바꿔가요. 각 수사들이 다른 사람들과 모두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고된 수도생활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게 형제애를 기르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수사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조금 뜻 밖입니다. 또 신 앞에 자신을 대면하는 개인적인 기도 외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메모해두고 바치거나,  심지어 가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질문에 수사가 감정이 복받쳐 머뭇거리다가 기도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카메라 바깥의 다큐 제작진들과도 중간중간 스스럼없이 친밀함을 표시하기도 하죠. 다큐멘터리 끝에 수사의 낭독에서 이 부분이 명확해져요.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보니 이해가 됩니다. 종교인으로서 자신들의 고독이 세상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한 거죠.  우리도 가끔 혼자가 됩니다. 난 누군지 지금 뭘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세상속에서 가끔 뭐하나 싶을 때, 입을 닫고 스스로 물러나요. 답을 얻고 안얻고 보다는 혼자가 된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속으로 들어갈 힘을 얻죠. 조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2022년 마지막 뉴스레터를 맺습니다. 한 해 사람들속에서 지쳤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외로움이 컸다면 따뜻한 만남을 갖길 바래요. 새해에도 우리 모두 세상(시장)에서 더 치열하게, 그렇지만 우리로 설 수 있기를.

Stat Crux dum volvitur orbis. 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우뚝 서 있다 

박기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