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주말, 영화 <기적>의 모티브가 된 양원역에 다녀왔습니다. 양원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이자, 한국 최초 민자역사(마을 사람들이 직접 지은 간이역)인데요- 경북 봉화의 외진 시골 마을 한 켠에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해볼까요? 배경이 된 1980년대 봉화, 이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철로’였다고 해요. 다만, 기차가 서지 않는 철길이었죠.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매일 위험천만한 외출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주인공 ‘준경’ 역시 5시간 넘는 통학 길을 걸어 다녔고요. 

한편, 마을 사람들은 ‘준경’ 없이는 위험한 철길을 감히 다닐 수 없었습니다. ‘준경’은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이자, 이웃들이 안전하게 철길을 건널 수 있도록 솔선수범한 인물이었거든요. 철로의 진동을 감지해서 열차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려주고요, 손수 신호등을🚦 만들어 철길 터널 입구에 세워놓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준경’이 가장 공들여 한 일은 청와대에 손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어요. ‘대통령님 보시소...’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편지는 끝내 대통령으로 하여금 간이역 설치를 허락하도록 하죠. 정부에서 간이역 설치를 허락은 하지만, 지금 당장 새 역을 지을 예산이 없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직접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간이역을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준경'은 왜 그토록 간이역 만드는 일에 매달렸을까요?) 

‘준경’이 누나와, 친구와, 또 마을 이웃들과 걸었던 그 철길은 현재 트레킹 코스가 되어 여행객을 부르고 있습니다. 저도 한 번 그 길을 걸어보았어요. 사연을 모르고 걸었다면 그저 풍광이 아름다운 시골길이었을 테지만... 철로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을까 생각하니 서늘하고 아찔한 길이었습니다. (아, 지금은 철로 옆에 보행자용 도로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쩐지 길을 걷는 내내 '준경'이 대통령께 보낸 손편지 내레이션이 귓가를 맴돌더라고요. 

한 사람의 집념이 모두가 만류했던 일을 현실로 끄집어낸 사건, 알고 보면 꾸준히 행동에 옮긴 '작은 일'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준경'의 손편지처럼요-💌 무시당하거나, 반응이 없거나, 혹은 당장 원하는 답을 못 구할지라도 묵묵하게 지금 할 일을 하는 것. 그 우직함이 기적의 시작점일지도 모르죠. 

정말 오랜만에 <비밀노트> 코너를 선보이는군요 :) 회원님과 나누고 싶은 문장을 찾느라 책과 콘텐츠의 바다를 꽤 오래 헤매었어요-🏄 그러던 중 발견한 제현주 작가의 <돈이 먼저 움직인다>, 충실한 팩트와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인간적인 고민까지 다양한 질감의 이야기가 담긴 꽃다발 같은 책을 발견했지 뭐에요!

<돈이 먼저 움직인다>는 국내 1세대 임팩트 투자자이자 전문가인 제현주 작가가 지속가능성, ESG, 기후변화라는 화두 앞에서 자본 시장이 재배치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현장을 명쾌한 언어로 그려낸 책입니다.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의 세상을 팩트와 통계, 사례로 짚어내고 있죠.

오늘 가져온 문장은 작가가 투자업계를 잠시 떠날 즈음 떠올린 생각입니다. 기업재무(corporate finance)를 중심으로 쌓은 커리어에 잠시 쉼표를 찍고 6년 간 투자업계를 떠나온 작가, '투자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며 거의 10권에 이르는 책을 번역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요.